2009년 02월 09일
디지털 방송에서의 WIPI
말많고 탈많던 위피(WIPI)가 드디어 내년부터 폐지된다고 방통위가 발표했다. WIPI로 인해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외산 휴대폰의 한국 진입으로 부터 보호받아 왔다. 하지만 그동안 외산 플랫폼을 사용하면 로열티가 유출되며 정부 시책을 믿고 기술 개발에 전념을 다해 온 회사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WIPI 유지론’과, WIPI로 인해 비용이 상승하고,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선택권이 제한되며, 소규모 제조사들의 내수 기반의 해외 수출을 어렵게 하고 (국내향으로 개발한 단말로는 해외에 가지고 나갈 수가 없음), WIPI기반으로 만든 무선 인터넷 서비스의 실적 저조와 WIPI의 기술 기준이 빠른 무선 인터넷 환경을 못 따라 감에 따라 오히려 가입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 제공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WIPI 폐지론’이 강하게 대립해 온것이 사실이다
사실 WIPI 도입은 한국 단말 제조사 지원과 국산 솔루션/서비스 회사들의 국내 자립 및 해외 진출 지원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두가지 모두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삼성과 LG등의 대기업들은 포기할 수 없는 국내 시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단가를 높여서라도 국내에서만 쓸 수 있는 WIPI 단말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했고, 중소 제조사들은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재활용도 불가능한 WIPI 조건을 만족 시켜야 했다. 이는 국내 통신 사업자들에게는 경쟁을 통한 단말 가격 인하라는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방해 요소가 되어 결국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격의 단말을 구매해야 하는 환경을 만드는 이유가 되었으며, 정부 입장에서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무선 인터넷 솔루션/서비스 회사들도 브루 등의 해외 벤더들의 물량 공세를 막아야 살아 남을 수 있어 WIPI와 같은 기술 장벽을 도입하는데 찬성을 하였으나 작은 국내 시장에서 그저 먹고 사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는 현실을 이제 인정하게 되었다. 정책이 없어진 후에 보호막이 사라져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그동안 정책이 이러한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대체 이 정책들로 인하여 누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가? 이제 한국은 정책의 지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절한 생존 경쟁에서 스스로 살아남아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지켜보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선진국에서의 혜택을 정당한 댓가로 받도록 하고, 국내 기업들에게는 자유롭게 최선의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여 경쟁력을 갖게 하는 길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디지털 방송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디지털 방송에서는, 기존의 방송 서비스 (실시간 채널 서비스 및 VoD 서비스)와는 차별화된 양방향 데이터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위성, 케이블, IPTV 모두 그동안 아날로그 TV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정보 제공형(날씨, 뉴스, 증권 거래 등)과 게임, 노래방 등의 양방향 데이터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핸드폰의 WIPI와 같이 셋탑박스의 미들웨어가 되는 MHP, OCAP, ACAP이라고 하는 표준을 사용하도록 강제 또는 권고 (위성은 강제, 케이블과 IPTV는 권고-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물론 WIPI와는 다르게 MHP, OCAP, ACAP등의 셋탑박스 미들웨어 표준들은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도 사용하는 표준이기 때문에 WIPI와는 상황이 틀리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셋탑박스 미들웨어 표준화 때문에 외산 셋탑박스 제조사들이 한국에 진입을 못 한것은 아니다. 이런 시장 환경과는 무관하게 한국 셋탑박스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력, 현지 지원 체계, 해외 영업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품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MHP같은 기술 장벽이 없더라도 한국의 유료 방송 사업자들은 외산 셋탑박스 제조사들의 제품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제조사와는 달리 국산 솔루션/서비스 회사들 측면에서는 WIPI와 상황이 크게 틀리지 않다. 국산 솔루션/서비스 회사들을 보호/지원하기 위해 의무 또는 권고의 성격이지만 거의 의무적으로 사업자들이 데이터 방송 산업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채택해야 했던 기술 표준들이 실제로 국내 사업자와 국산 솔루션/서비스 회사들에게 얼마나 이익을 가져다 주었는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MHP의 경우 유럽 및 그 외 지역에서 많은 사업자들이 사용할 것으로 기대를 하였으나 생각보다는 확산이 느려 일부(이탈리아, 독일, 대만 등)만 채택해서 사용하고 있다. ACAP의 경우는 아직 한국 이외에는 적용 사례가 없고, 실제로 적용 가능성도 희박하다. OCAP의 경우는 미국에서 이제서야 Tru2way라는 이름의 조금 다른 스펙으로 채택이 고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국내에서만 사용되고, 해외 시장에서는 그리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이 실제로 얻는 이익은 미미하고 데이터 방송 서비스 사업자(DP라고 불리는)들도 열악한 수익 구조로 해외 시장 진출은 커녕 국내 시장에서도 수익을 내지 못 하는 구조가 되었다. 혜택을 보는 대상은 한국에서만 사용가능한 미들웨어를 공급하는 회사정도지만 그 회사 마저도 해외에서 벌어 들이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의 무용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예이다.
과연 국내 유료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정부 시책으로 시작된 기술 표준으로 인해서 얼마나 이익을 보고 있을까? WIPI를 폐지하여 다양한 무선 인터넷 솔루션/플랫폼을 채택하게 될 이동 통신 사업자들 처럼 다양한 데이터 방송 기술을 채택하여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를 출시하게 되면 현재 보다 더 저렴하게 유료 방송 시청자들이 더 다양한 데이터 방송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WIPI 정책과 같이 국산 제조사/솔루션/데이터 방송 서비스 사업자를 키우려고 그들이 기대어 먹고 살 플랫폼 사업자들의 체력만 저하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 by | 2009/02/09 14:32 | 디지털방송야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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